'책거리'에 해당되는 글 6건
- 2010/02/06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 :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 (2)
- 2010/01/23 노무현, 그가 꿈꾼 진보 : 진보의 미래
- 2010/01/11 자기 복제의 최소 단위 : 이기적 유전자
- 2009/12/25 개인과 국가 :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 2007/11/20 <격동의 현대사 : 지식인의 의무> 중
- 2007/07/03 손님 - 황석영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 :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
책거리 2010/02/06 00:15
송호근 교수와의 인연 (인연이라 하기에는 일방적인 성격이 짙지만) 은 4년 전인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부 2학년 핵심교양 과목으로 '세계와 한국의 이데올로기'라는 강의를 통해서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를 처음 알게 되었다. 수강 신청의 경위는 그저 '강의명' 때문이었다. 사실 다른 과목을 수강하려 했으나 인기 강좌였던 탓에 결국 신청하지 못하고 차선책을 찾던 차에 이름이 맘에 들어 선택했다. 그렇게 어쩌다 듣게 된 강의였지만 교수님의 시각이 상당히 신선했던 탓에 즐겁게 수강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 때부터 사회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리라.
그렇게 강의를 수강하면서 교수의 저작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게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상당히 짧은 분량으로 일종의 '보고서'같은 책이었지만, 간결하면서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사회 현상들을 꿰둟는 큰 줄기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좋은 기억만 남아있던 책이었다. 최근에 무슨 일 때문인지 이 책을 다시 꺼내 보게 되었다. 한 번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조금 망설였지만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니 다시 한 번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결과는? '글쎄올시다......'
물론 지금 두 번째로 책을 읽고 난 뒤에 그 때와 180도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전혀 다른 성격으로 보이는 현상들을 아우르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저자의 통찰력에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또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대한민국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사회적 관점 또한 배울 점이 많다.
하지만 두 번째 읽으면서 느낀 것은 당시에 상당히 '무비판적'으로 글을 읽었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강의나 다른 저서들로 인해 상당히 많은 감명(?)을 받은터라 그의 주장들을 별도의 여과 과정없이 수용하였고, 정신을 차린 지금에서야 그것들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평등주의를 '습속(folklore)'이라 부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의문이라든가 '이 이론이 현재 사회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가?'하는 의문들을 당시에는 제기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후회들을 곱씹으며 이번에는 머리 좀 써 가며 읽으려 했건만,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은 이것저것 고민거리가 많았기 때문일지도.
노무현, 그가 꿈꾼 진보 : 진보의 미래
책거리 2010/01/23 22:19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 수수 관련 수사 때문에 친노 진영이 한창 시끄러웠을 즈음에 '노무현 재단'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유작인 '진보의 미래' 출간 기념식을 가졌다는 뉴스를 들었다. 점을 지나치면서 얼핏 표지를 보았다. 그 때는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많지 않았다. 결국은 '죽음'이라는 방법을 택해서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은 채 우리 곁을 떠난 사람이 가졌던 철학이, 그가 정한 인생의 말로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하는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지난 달에 서점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지나는 길에 우연히 표지를 보았다. 그의 사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불현듯 떠오르는 작금의 청와대 때문이었을까.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바로 주문했다.
사실 책으로 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형태를 갖춘 책이라기 보다는 저술 준비 과정에서 나온 정리되지 않은 원고들, 육성 기록들을 나열해 놓은 자료집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이후에 이 책의 내용들을 바탕으로 한 책다운 책이 출간되리라는 기대는 차치하고서라도, 정리되지 않은 원고들로 책을 내는 것은 좀 성급한 일이 아니었을까. 물론 작년 초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추모의 물결이 점차 식어가는 이 시점에 진보의 아궁이에 불을 좀 지펴보겠다는 정치적 심산도 조금은 깔려있었겠지만.
'진보의 미래'는 책으로서는 부족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엿보기에는 충분하다. 그가 시대를 살아오면서, 대통령으로서 각종 정책들을 수행해 나가면서, 퇴임 이후에 고향으로 내려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생각들과 추구했던 이상들. 그것들이 지향하는 바는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그 철학의 바탕에는 '진보'에 대한 믿음이 깔려있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이 책을 참 많이 읽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저런 책들에서 개념이나 주장들을 끌어다가 인용하는 것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그는 정치 이념이나 실제 사례들에 대한 분석과 관련된 서적들을 많이 읽고 소화해 낸 것으로 보여진다. 좀 더 살아서 이 책을 완성하였더라면 지금보다 더 대단한 저서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진보와 보수에 대한 생각, 신자유주의의 물결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 진보가 가져야 할 대안 등 여러 가지 인상 깊은 내용들이 많았지만 가장 깊이 남았던 것은 민주주의와 시민에 대해 가졌던 그의 기대였다.
'그야말로 역사의 진보를 밀고 가는 역사의 주체가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의 이상과 목표를 분명하게 가지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운영해 갈 수 있는 시민 세력이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답은 민주주의밖에 없어요.'
민주주의, 나아가서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결국 '깨어있는' 시민의 노력이다. 그는 이 점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견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민들의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마저 박탈하고 있는 현 정부의 행태는 한심하기 그지없다. 올해 6월에 있을 선거를 기대하고 있지만 그다지 잘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시민으로서 행사해야 할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주체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가 아닐까.
자기 복제의 최소 단위 : 이기적 유전자
책거리 2010/01/11 16:35
상당히 유명한 책이고, 또 유명한 저자이다. 서점을 두리번거리다 보면 두꺼운 유전학 서적들을 간혹 발견하곤 했다. '눈 먼 시계공'이라든가 '확장된 표현형'이라든가 '만들어진 신'이라든가. 같은 사람의 책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최근에 알게 되었다. 집 한 구석 책장에 이 책이 꽂혀있었던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읽으면서 후회했다. '왜 진작에 읽지 않았을까!'
그가 제시하는 이론은 다분히 충격적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 자신을 '기계'로 표현하는데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 (심지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까지도) 를 유전자들의 생존을 위한 '생존 기계'로 묘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지금까지 상식으로 여겨져 온 진화론과 유전학의 일반적인 통념 - 많은 생물학자들이 인정한 개체 내지는 그룹을 기반한 견해 - 들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다.' 다윈이 제시한 진화에 대한 이론(자연선택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유전적인 부분의 결함에 의해서 개체에 변이가 발생하면 원래 존재했던 개체와는 다른 성질을 가진 개체가 탄생하고 그렇게 나타난 새로운 종류의 개체는 자연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쇠퇴하거나 번영하게 된다. 그렇게 생긴 변화들이 축적되면서 아주 단순한 원시 생명체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생명체들이 지구 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설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체들이 번식을 하는 이유는 '종족 보존'을 위한 것이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개체' 중심적인 관점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과연 개체나 종은 '살아남는 것'인가? 다시 말하면, 자기 복제의 최소 단위는 무엇인가?' 저자는 자기 복제의 최소 단위를 바로 '유전자'로 칭한다. 이 '자기 복제자'는 마치 자신의 '사본'들을 누구보다도 많이 남기기 위해서 어떤 짓이든지 서슴치 않는 무자비한 존재인 것처럼 행동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결코 의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저자는 항상 '가치 판단'이 들어간 듯한 문장들에 대해 유의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생존 기계'를 만들고 그들 안에서 자신의 이익, 즉 같은 모양을 갖춘 '자손'들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 지금도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다지 근거 없는 논의 같아 보이지만 저자는 책의 대부분을 이러한 관점을 통해 설명 가능한 수많은 사례들을 제시하는데 쓰고 있다. 특히 '이타적인 행동'들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 도입한 'ESS (Evolutionary Stable Strategy)'는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였다. 자세한 내용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겠으나,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이 상당히 신선하고 또 논리적으로 그다지 모순이 없다느 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물론 다른 비판적 저서들의 내용을 살펴보지는 못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럴듯 한 이론'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할 수 있는가? 이론의 설명 가능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론이 옳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으나 실험적 검증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어 있기를 기대한다. (사실 책이 출판된지 20년쯤 되었으니 학계에 진전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책이 '일반적인 생물체'에 대한 논의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까닭은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일 터이다. 인간이란 정말 특별한 존재인가? 만일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특별하게 만드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간이 특별한 척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개인과 국가 :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책거리 2009/12/25 14:47
얼마 전에 읽은 유시민의 책 '청춘의 독서'에 등장했던 열 네권의 책들 중의 한 권이다. 열 네권 중에서 읽어본 책은 한 권도 없었지만 그가 책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과 그에 대한 생각들을 접하면서 모두 꼭 한 번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서 읽어보게 되었다. 솔제니친의 책이 첫 번째인 이유는 그저 어느 날인가 책상에 놓여있기 때문이었다고나 할까.
책의 내용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별반 다르지 않다.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풀려났다는 이유로 노동교정형을 받고 노동수용소에 수감 중인 이반 데니소비치(책에서는 줄여서 슈호프로 불린다.)가 보낸 아주 평범한 하루가 내용의 전부이다. 그 어떤 특별한 사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그가 10년동안 수용소에서 보냈던 나날들 중에서 극히 평범한, 조금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하루를 담담하지만 세밀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국가 권력이 가지는 무시무시함에 또 한 번 치를 떨게 된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은 그의 예언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은 러시아와 중국에서 꽃을 피웠다. 또한 유토피아를 그렸던 그의 꿈은 일당 독제의 전체주의 체제의 등장으로 산산히 물거품이 되고 만다. 2차대전 이후에 지구 상에서 미국과 대항하여 '제2세계'의 주축이 된 소련의 몰락은 이미 그 내부에서 예견된 것이었다. '합법적인 폭력'을 통해 행해지는 국가의 횡포와 새로운 지배 계급의 출현, 그 사이에 벌어진 각종 부정부패들은 개인이 감내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차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곧 '민주주의'를 향한 국가의 발전 방향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최근에 '한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과연 '그 나라'가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케 한다. 그렇다면, '각 개인이 국가의 횡포에 맞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한 책의 대답은 너무나도 절망적이다. 이미 억압에 길들여져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인 책 속의 인물들에게서 우리는 그 어떠한 희망도 발견할 수 없다. 그렇지만 솔제니친, 작가 자신이 보여준 삶의 행적들은 개인의 저항에 대한 희망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게 한다. 그가 써 낸 이 책이 바로 그것이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순수예술', 다시 말하면 인문, 사회, 정치, 그 어떤 것과도 결부되지 않고 오직 아름다움만을 표현하는 예술은 없다. 인간과 인간의 소통이 단절되지 않는 이상, 그리고 그 예술의 창작자가 인간인 이상, 모든 작품 속에는 시대의 현실과 작가의 사상이 깃들기 마련이다. (역자의 해설에 '순수예술'에 대한 언급이 있었기에 잠시 생각해 보았다.)
<격동의 현대사 : 지식인의 의무> 중
책거리 2007/11/20 02:01
격동의 현대사 : 지식인의 의무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대화’를 읽고 -
(전략)
저자는 서문에서 책을 읽는 젊은이들, 지난 세대의 많은 희생을 통해서 이룩한 ‘현재’의 대한민국이라는 행복한 사회를 살고 있는 지금의 세대에게 한 가지 당부를 하고 있다. 그것은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당면한 현실적 상황에 대해서 독자 자신이 ‘지식인’이 되어 상황에 대한 가치판단을 해보고 어떻게 행동하였을지 생각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책의 저자가 의도한 바와 같이 자기비판의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저자는 바라고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 나갈지 모르는 한 명의 ‘미성숙한 지식인’에 대해서 자주 생각을 해보았다. 개인주의와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서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비판,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가 없다면, 사회와 인류는 과연 발전할 수 있는가? 그 ‘미성숙한 지식인’이 목표로 하고 있는 ‘과학적 진리에 대한 탐구와 성찰’이 사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인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어떠한 사회적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러한 일련의 질문들의 해답을 찾아 조금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과정 속에서 ‘미성숙한 지식인’이 조금은 성숙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저자, 리영희씨에게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나서 이 책, 저 책 건드려보았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읽고 있었지만, 너무 어려웠다.
서적이 전문적이라고 탓하고 있지만, 결국 나의 무지가 원인이겠지.
그건 차근차근 읽기로 했고, 이번엔 황석영 작가의 책을 건드렸다.
1학기 핵심교양 수업이었던 '근현대 한국 민족주의' 정용욱 교수님의 추천도 있었고
사실 가까운 책꽂이에 꽂혀있기도 했다.
(하지만 읽기 시작한 것이 광화문 교보문고라는 것은.)
1945년의 갑작스런 해방 이후, 한반도의 정세는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목표로 어느 정도 연합 전선을 구축해 온 민족주의진영과 사회주의진영은
남과 북에 진주한 미국과 소련이라는 거대 세력에 의해 결국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
황해도 신천과 그 부근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기독교도와 공산세력의 이권 다툼으로 일어난 그 사건을
작가는 당사자들의 시선으로 재현한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였다' 라는 책 속 장로의 말처럼
결국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나 모두 피해자였고, 가해자였다.
이것을 단지 민족 분단의 아픈 과거로 남길 것인가.
모두 멀리서 바다 건너 온 '손님'들 탓으로 돌릴 것인가.
아직도 어딘가를 떠돌지 모르는 억울한 영혼들은
이 땅 위에 사는 우리가 어떤 역사를 남기기를 바라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