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국가 :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책거리 2009/12/25 14:47
얼마 전에 읽은 유시민의 책 '청춘의 독서'에 등장했던 열 네권의 책들 중의 한 권이다. 열 네권 중에서 읽어본 책은 한 권도 없었지만 그가 책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과 그에 대한 생각들을 접하면서 모두 꼭 한 번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서 읽어보게 되었다. 솔제니친의 책이 첫 번째인 이유는 그저 어느 날인가 책상에 놓여있기 때문이었다고나 할까.
책의 내용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별반 다르지 않다.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풀려났다는 이유로 노동교정형을 받고 노동수용소에 수감 중인 이반 데니소비치(책에서는 줄여서 슈호프로 불린다.)가 보낸 아주 평범한 하루가 내용의 전부이다. 그 어떤 특별한 사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그가 10년동안 수용소에서 보냈던 나날들 중에서 극히 평범한, 조금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하루를 담담하지만 세밀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국가 권력이 가지는 무시무시함에 또 한 번 치를 떨게 된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은 그의 예언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은 러시아와 중국에서 꽃을 피웠다. 또한 유토피아를 그렸던 그의 꿈은 일당 독제의 전체주의 체제의 등장으로 산산히 물거품이 되고 만다. 2차대전 이후에 지구 상에서 미국과 대항하여 '제2세계'의 주축이 된 소련의 몰락은 이미 그 내부에서 예견된 것이었다. '합법적인 폭력'을 통해 행해지는 국가의 횡포와 새로운 지배 계급의 출현, 그 사이에 벌어진 각종 부정부패들은 개인이 감내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차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곧 '민주주의'를 향한 국가의 발전 방향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최근에 '한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과연 '그 나라'가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케 한다. 그렇다면, '각 개인이 국가의 횡포에 맞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한 책의 대답은 너무나도 절망적이다. 이미 억압에 길들여져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인 책 속의 인물들에게서 우리는 그 어떠한 희망도 발견할 수 없다. 그렇지만 솔제니친, 작가 자신이 보여준 삶의 행적들은 개인의 저항에 대한 희망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게 한다. 그가 써 낸 이 책이 바로 그것이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순수예술', 다시 말하면 인문, 사회, 정치, 그 어떤 것과도 결부되지 않고 오직 아름다움만을 표현하는 예술은 없다. 인간과 인간의 소통이 단절되지 않는 이상, 그리고 그 예술의 창작자가 인간인 이상, 모든 작품 속에는 시대의 현실과 작가의 사상이 깃들기 마련이다. (역자의 해설에 '순수예술'에 대한 언급이 있었기에 잠시 생각해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