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복제의 최소 단위 : 이기적 유전자


상당히 유명한 책이고, 또 유명한 저자이다. 서점을 두리번거리다 보면 두꺼운 유전학 서적들을 간혹 발견하곤 했다. '눈 먼 시계공'이라든가 '확장된 표현형'이라든가 '만들어진 신'이라든가. 같은 사람의 책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최근에 알게 되었다. 집 한 구석 책장에 이 책이 꽂혀있었던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읽으면서 후회했다. '왜 진작에 읽지 않았을까!'

그가 제시하는 이론은 다분히 충격적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 자신을 '기계'로 표현하는데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 (심지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까지도) 를 유전자들의 생존을 위한 '생존 기계'로 묘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지금까지 상식으로 여겨져 온 진화론과 유전학의 일반적인 통념 - 많은 생물학자들이 인정한 개체 내지는 그룹을 기반한 견해 - 들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다.' 다윈이 제시한 진화에 대한 이론(자연선택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유전적인 부분의 결함에 의해서 개체에 변이가 발생하면 원래 존재했던 개체와는 다른 성질을 가진 개체가 탄생하고 그렇게 나타난 새로운 종류의 개체는 자연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쇠퇴하거나 번영하게 된다. 그렇게 생긴 변화들이 축적되면서 아주 단순한 원시 생명체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생명체들이 지구 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설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체들이 번식을 하는 이유는 '종족 보존'을 위한 것이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개체' 중심적인 관점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과연 개체나 종은 '살아남는 것'인가? 다시 말하면, 자기 복제의 최소 단위는 무엇인가?' 저자는 자기 복제의 최소 단위를 바로 '유전자'로 칭한다. 이 '자기 복제자'는 마치 자신의 '사본'들을 누구보다도 많이 남기기 위해서 어떤 짓이든지 서슴치 않는 무자비한 존재인 것처럼 행동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결코 의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저자는 항상 '가치 판단'이 들어간 듯한 문장들에 대해 유의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생존 기계'를 만들고 그들 안에서 자신의 이익, 즉 같은 모양을 갖춘 '자손'들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 지금도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다지 근거 없는 논의 같아 보이지만 저자는 책의 대부분을 이러한 관점을 통해 설명 가능한 수많은 사례들을 제시하는데 쓰고 있다. 특히 '이타적인 행동'들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 도입한 'ESS (Evolutionary Stable Strategy)'는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였다. 자세한 내용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겠으나,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이 상당히 신선하고 또 논리적으로 그다지 모순이 없다느 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물론 다른 비판적 저서들의 내용을 살펴보지는 못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럴듯 한 이론'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할 수 있는가? 이론의 설명 가능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론이 옳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으나 실험적 검증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어 있기를 기대한다. (사실 책이 출판된지 20년쯤 되었으니 학계에 진전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책이 '일반적인 생물체'에 대한 논의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까닭은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일 터이다. 인간이란 정말 특별한 존재인가? 만일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특별하게 만드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간이 특별한 척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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