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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1/22 걷고, 또 걷고, 그리고 걷고. (2)
걷고, 또 걷고, 그리고 걷고.
가끔은 정말 대책없이 걷는다. 목적지는 걷기 시작하면서 잠깐 생각해보지만,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처음 떠올렸던 목적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미 그 곳에서부터 머리와 발은 각자 걸어간다. 발은 발대로 걷고, 머리는 머리대로 걷는다. 머리는 도대체 어떻게 걷는걸까?
서울에서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역시 서울은 넓었다. 그리고 내가 아직까지 제대로 탐험해보지 못한 서울의 북동쪽은 아직 낯설었다. 그리고, 서울대는 역시 교통의 요지와 거리가 멀었다. 특별히 강북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문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과 2호선을 타고 사당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는 방법이 있다. 그렇지만 버스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지하철 환승은 번거롭다. 이 길을 3년째 다니고 있었지만, 이렇게 불편했다니.
회기역까지 가기 위해 네 가지의 교통편을 이용했다. 봉천동 셔틀과 2호선과 4호선과 1호선. 3번이나 갈아탄 끝에 친구와의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서울인데, 1시간 15분이라니. 서울역에서 시간만 잘 맞추면, 집에서 KTX타고 대전역 도착할 정도의 시간이다. 참 넓다. 서울.
회기역은 오늘 처음 이용해보았다. 최근에 개축을 하였는지, 깨끗한 편이었다. 사람들도 꽤나 많았지만, 공파를 찾아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보자마자 말했다. "머리가 그게 뭐냐?"
역을 나와 보니, 생각보다 번화한 편이어서 놀랐다. '번화한게 아니라 저렴한 것'이라고 옆에서 계속 우겼지만, '번화'와 '저렴'은 전혀 별개의 단어라구. 한 서너번은 말한 것 같다. '경영학과의 언어'라면서 끝까지 우기네. 그래 너 잘났다. 어쨌든, '번화'하고, '저렴'했다.
친구는 KAIST 서울 캠퍼스에 재학 중인데, 서울 캠퍼스란게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도 대학교 1학년 때, HPAIR 주최의 컨퍼런스에 참여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과거 명성황후가 잠시 안치되었던 홍릉 근처다. 근처에 고려대, 경희대, 시립대, 또 몇 개의 대학이 더 있다. 대학들은 다들 몰려있는데, 서울대는 주변에 관악산 뿐이다. 관악산, 관악산. 아. 낙성대가 있군.
배가 정말로 고팠다. 대학 사상 최악의 점심 (정말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을 대충 먹은 상태로 6시 30분까지 버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맛있는 거 안 사주면 혼난다."라고 점심을 먹은 직후 으름장을 놨으니 약간은 기대를 했는데, 족발이었다. 음. (정말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는 감탄사이다.)
식사 후에 캠퍼스 구경을 갔다. 서울대만 산 속에 있는 줄 알았는데, 이건 그야말로 산 속이다. 어제 눈이 와서 얼어버린 가파른 등산로를 지나서야 기숙사 앞에 도착했다. 공부하긴 참 좋겠네. 사실 야경이 너무 좋았다. 기숙사 옥상에 올라가면 훨씬 잘 보인다 그러길래 가보고 싶었으나, 여기까지 올라오기도 힘들었으므로 다음 기회에.
친구는 떠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강의동 두어 개가 있는 정문 근처로 내려오니, 2년 전 기억이 떠오른다. 'C2C'의 탈락은 너무나도 아쉬웠다. 정말로 1등감이었는데. 롯데월드의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다들 잘 지내는 걸까.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걸었다. 멜로디를 흥얼거리기도 하다가, 오른손으로 지휘도 해보다가. 고대 정문을 보기 위해서는 고려대역을 지나야 했다. 아마, 작년 3월인가 고대 의대 오케스트라를 보기 위해 왔었던 것 같다. 그 후에도 왔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대 정문은 어느 학교 정문과 다르게 넓어서 보기 좋다. 그래서 어느 학교와는 다르게 입구에서 '병목 현상'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어느 학교인지 참.
걷고 걸어, 안암역에 도착했다. 아마도, 2악장이 끝나갈 즈음이었으니 친구 기숙사에서 30분은 걸었겠지. 좀 더 걷고 싶었지만, 몸이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 '그만 좀 걸으라구.'
걷는 것은 삶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육체의 힘만을 이용해서 어딘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길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 여기저기 서 있는 건물들이며, 파란 하늘이며, 손잡고 걸어가는 연인이며, 신호 위반하는 택시며 - 을 인식하는 과정, 그 사이에 떠오르는 수없이 많은 생각. '개체의 발생은 계통의 발생 과정을 반복한다'는 헤켈의 발생반복설과 같이 '걷는 과정'은 지금까지의 '삶의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S. 요새는 말장난이 좀 심해졌다.



